티스토리 뷰

일상

카메라구입요령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3. 14. 00:00

0. 본론에 앞선 잔소리
 
바야흐로 사진의 시대다. 디카와 인터넷의 등장 및 상호작용이야 이미 해묵은 이야기지만, 작년부터의 분위기는 그 전과 또 다르다. 대략 5~2년 전의 시기는 준비운동에 불과했다고 할 정도로 흐름은 컴팩트에서 DSLR로, 디씨인사이드에서 SLR클럽과 레이소다로, 장난/재미/기억이라는 가벼운 취미에서 창작/표현/전달이라는 진지한 활동으로 변모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 하나의 경향으로 굳어져 공인의 단계로까지 접어든 것 같다. 올 한 해 있었던 주요 사진전만 보자. 인사동 전역을 뒤덮었던 사진 페스티벌, 대구 무역센터를 장악한 사진 비엔날레에 이어 급기야는 예술의 전당 미술관 전관이 '만 레이와 세계사진역사전'에 한 달 반이라는 기간을 내주고 있다는 사실은 제도권 문화예술계의 공식 추인에 다름 아니다. 80년대는 시(詩)의 시대, 90년대는 음악과 영화의 시대였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제 2000년대를 사진의 시대라고 부른대도 딴지를 거는 사람은 드물 듯하다.
 
하지만 이런 유행이 개인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대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혼재이기 마련인데, 사진의 경우 그 특수성 때문에 자칫 후자가 더 강하게 드러나기 쉽다. 바로 지름신이다. 다른 장르의 경우 그냥 사거나 가서 감상하면 되지만 사진은 다르다. 수용보다 생산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이 가있다. 내 카메라를 사서 내가 찍는 것이 재미의 핵심이며, (실은 그렇지 않지만) 별로 어렵지도 않아보인다. 스킨 스쿠버처럼 자격증을 따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바이올린처럼 되게 배우기 어려워보이는 것도 아니며, 공기총처럼 아무나 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카메라 회사들이야 신이 났겠지만 요즘의 장비병 확산 추이를 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심도조절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30D에서 5D로 기변을 하질 않나, 나도 망원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에 바로 아빠백통을 지르질 않나, 그러다가는 애꿎은 브레송을 핑계로 라이카를 들고 나타나더니 필름 교환도 할 줄 몰라 헤맨다. 디지털의 가벼움을 개탄하며 필름 찬양에 열을 올리길래 물어봤더니 아직 자가현상 한 번 해본 적 없단다. 이건 쇼핑중독의 일종이자 소비지상주의의 연장일 뿐, 사진도 건전한 취미도 그 어떤 개뿔도 아니다.
 
그 많은 카메라와 사진장비에 대해 이해하려면 사진에 아주 다양한 분야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걸 다 할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해 내가 찍고 싶고 찍을 수 있는 사진의 분야는 상당히 한정적이다. 수많은 종류의 장비가 있는 것은 수많은 종류의 사진분야가 있기 때문이지 돈이 덤비면 다 써보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종류의 사진을 찍는지를 먼저 자각하고 거기에 맞춰 필요한 장비만 갖추면 되는 것이다.
 
나의 필요성에 따라 장비를 장만하라. 업자들의 부추김이나 허망한 유행에 넘어가지 말고 주관을 뚜렷이 하라. 이것이 사진장비 핸들링의 대원칙이다. 그 이상은 카메라 회사에게 기부금 내는 짓일 뿐이다. 소비중독에 걸려 아무리 기변을 해봐야 당신은 조금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며, 마치 마약이나 도박중독처럼 고통과 갈증과 카드빚만 늘어갈 뿐이다. 사진은 찍는 재미, 보여주는 재미지 장비 사고 바꾸는 재미가 아니다. 어떤 종류의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종류와 수준의 장비가 적절한지 정리해본다.
 
 
1. 일상의 스케치, 여행지에서, 간단한 기록사진 등 일반적인 용도로 쓸 때
 
대다수의 일반인에게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주력일 분야다. 일단 과연 DSLR이 필요할지 자문해보라. 비싸고, 크고, 무겁고, 찍히는 사람도 대개 편해하지 않는다. 상당한 가격의 DSLR을 쓰는 사람들도 이런 용도를 위해 다시 컴팩트를 추가장만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렇다고 RF 필카가 필요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과거 RF 필카의 모든 장점은 요즘 컴팩트 디카가 다 갖고 있다(참고글 링크). 쓸데 없이 라이카니 콘탁스니 뽐뿌 받지 말고 우선 똘똘한 컴팩트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다.
 
[컴팩트 디카]
 
무조건 최신형이 좋다. 다른 디지털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신형일수록 성능이 일취월장 나아지고 있다. 가격은 싼 것으로는 20만원대, 좋은 것도 30만원대면 충분하다. 40만원이 넘는 것은 초기출시가가 비싸기 때문이거나 바가지라고 보면 된다. 컴팩트 제품을 40만원 이상 주고 사는 것은 낭비다. 웹 게시용, 보통 사이즈의 인화용, 소식지 등에 간단하게 인쇄할 용도라면 컴팩트로도 충분하다.
 
화소수는 더 이상 고려대상이 아니다. 600만 이하의 신제품은 찾아볼래야 볼 수도 없게 됐기 때문이다. 고ISO가 지원되거나 손떨림보정(방지가 아니라) 기능이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한데, 이것도 요즘에는 대개 지원된다. 캐논, 후지, 파나소닉, 삼성 정도의 메이커가 인기 있다. 반면 하이엔드 제품은 이제 별 필요가 없어졌다. 비슷한 가격의 DSLR을 사는 게 차라리 낫다.
 

 

▲ 컴팩트 디카 : 캐논 IXUS 800 IS
 
[보급형 DSLR]
 
단언하건대 DSLR 이용자의 80~90%는 보급형으로도 충분하다. 제발 바디에 낭비하지 말고 대신 렌즈나 기타 장비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DSLR에서도 최신형이 좋다는 법칙은 그대로 통용된다(렌즈는 말고 바디만). 니콘 D50(좀 더 욕심을 낸다면 D80)과 캐논 400D가 대표적이며, 그와 비슷한 가격의 펜탁스/삼성, 소니, 올림푸스 제품도 괜찮을 것이다. 50~100만원 사이의 것이면 충분하다.
 
기억하시라. 대략 2005년 이후에 나온 모든 DSLR 바디는 다 훌륭한 제품들이다. 일본(과 독일)의 카메라 회사들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컴팩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DSLR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DSLR을 만들고 있는 회사는 모두가 7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전문업체들이며, 그 유명한 소니도 미놀타를 인수하고 나서야 간신히 제품을 내놓았을 정도다. 아무 것이나 사도 후회 없다는 뜻이다. 다만 렌즈와 기타장비 장만의 편의성, A/S 등을 감안해 니콘과 캐논이라는 양대산맥 쪽을 먼저 고려하는 편이 유리하다. 사양은 걱정 마시라. 다시 말하지만 다 쓸 만하다.
 
[렌즈]
 
처음 DSLR을 사면 렌즈도 함께 사야 할텐데, 방향은 하나뿐이다. 표준계 줌렌즈. 다만 좀 더 싸고 더 어두운 렌즈냐, 조금 더 비싸고 더 밝은 렌즈냐 중에서만 선택하면 된다. 전자는 10만원대 초반의 이른바 '번들 렌즈'를 말한다. 니콘이나 캐논의 18-55mm F3.5~5.6이 여기에 해당한다. 돈이 이것밖에 없으면 우선 이것이라도 사시라. 화질 자체는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여유가 있다면 처음부터 이보다 한 단계 높은 'F2.8급 렌즈'를 장만하길 권한다. 디지털 바디와 달리 렌즈는 10년이 지나봐야 별 기술적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겁먹지 마시라. 많이 비싸지도 않고, 별로 무겁지도 않다. 니콘 17-55나 캐논 24-70 따위는 한귀로 듣고 흘려라. 거의 바가지 낭비 아이템이라고 보면 된다.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독일 사이트인 포토존의 렌즈 테스트 결과치를 직접 확인해보시라.
 
내가 권하는 것은 탐론 17-50, 시그마 18-50, 토키나 16-50(발매예정) 등이다. 대략 30~40만원대의 가격일 것이다. 성능은 남아돌 정도로 충분히 좋다. 이 회사들을 이른바 서드 파티라고 하지만 전혀 꺼려할 것 없다. 최소한 화질(광학적 성능)에 관한 한 유명업체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실제로 유명업체의 전문기술자들이 뛰쳐나와 만든 회사들이다.)
 
다만 수퍼줌은 추천하지 않는다. 배율이 10배 남짓이나 되는 렌즈들은 컴퓨터로 설계하고 컴퓨터로 계측해서 만드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성능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줌렌즈는 일반적으로 3배율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 F2.8급 표준줌렌즈 : 탐론 17-50

  
렌즈 선택의 기준을 말 나온 김에 정리해보면, 최우선 고려사항은 당연히 초점거리다. 누구나 표준이냐 광각이냐 망원이냐를 가장 먼저 따질 것이다. 둘째는 밝기다. 물론 밝을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 더불어 가격과 무게와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점이다.(위에서 든 서드 파티 표준줌들은 예외에 속한다.) 따라서 자신의 필요와 그에 딸려오는 부담을 잘 저울질해야 한다. 무게와 크기로 렌즈를 고른다는 말은 얼핏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고지고 다니다 보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셋째는 기능이다. 초음파모터(니콘 AF-S 등; 제조사별 렌즈 용어에 관해서는 이 글을 참고)가 장착된 것은 빠르고도 조용한 오토포커스를 제공하며, 손떨림보정(니콘 VR 등)이 되는 것은 훨씬 느린 셔터속도를 구사할 수 있다(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에는 소용이 없지만).
 
초보자들이 죽어라 따지는 선예도는 이제야 나올 차례다. 바디와 마찬가지로, 요즘 팔리고 있는 렌즈 중에 몹쓸 선예도를 가진 제품은 없다. 첫째부터 셋째까지의 기준을 다 따져본 후에나 추가로 고려하면 충분한 것이다. 선예도와 관련된 가장 확실한 법칙은 50~85mm 정도(표준~준망원)의 렌즈가 제일 좋다는 것이다. 이보다 광각이거나 망원일수록 무조건 선예도는 떨어지게 되어있다. 비싸도 소용없고 밝아도 소용없다. 무려 1000만원에 이르는 600mm보다 10만원짜리 50.8의 선예도가 더 좋다. 칼같은 선예도를 원한다면 비싼 렌즈를 탐내지 말고 표준계를 충실히 쓸 일이다.
 
색감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렌즈에 따른 미세한 색감의 차이(흔히 따뜻한 쪽이라거나 차가운 쪽이라고 하는)가 있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를 주요고려사항으로 놓는 건 본말이 전도된 얘기다. 그보다는 바디 종류에 따른 차이가 더 크고, 그보다는 화이트밸런스에 따른 차이가 더 크고, 이 모두는 후보정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며, 그래봐야 보여지는 모니터나 인화를 맡긴 현상소에 따라 또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디지털이라서가 아니다. 어떤 종류의 필름인가, 어느 현상소에 맡겼는가 혹은 어떻게 자가스캔을 했는가에 따라 필름도 디지털 이상으로 색감이 널을 뛴다.
 
반면에 왜곡, 비네팅, 플레어, 색수차 등은 오히려 신중히 따질 가치가 있다. 특히 실제보다 부풀거나 홀쭉하게 휘어보이는 왜곡현상은 예상 외로 골치 아픈 것인데다 별다른 해결방법도 없기 때문에 나의 경우 선예도보다 더 중시하는 편이다. 가장자리가 어두컴컴하게 나오는 비네팅도(로모같은 장난감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면) 결코 달갑지않은 손님이며, 역광시 이상한 빛멍울이 생기거나 화면 전체가 뿌옇게 되는 플레어, 역광이나 반짝거리는 물체의 가장자리에 보라빛 띠가 생기는 색수차도 마찬가지다. 비네팅, 플레어, 색수차는 촬영기법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만 역시 적을수록 좋은 현상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같은 회사에서 나온 비슷한 가격과 사양의 렌즈끼리도 들쑥날쑥 다르기 때문에 테스트 결과를 미리 참고하는 것이 좋다.
 
정리하자면, 렌즈를 바보같이 선택하는 요령의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다: 선예도 < 색감 < 가격 < 뽀대.
 
[기타 액세서리들]
 
아래 2-2에서 자세히 말하겠지만 MCUV 필터는 필수항목이라 할 수 있다. 렌즈 후드는 끼워주는 것을 쓰거나 안 끼워주는 렌즈일 경우 저렴한 것으로 대충 쓰면 된다.(개밥그릇 후드라서 마음에 안 들고 꽃무늬 후드라서 좋다는 식의 게시물을 읽을 때면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카메라 가방도 적당한 것으로 대충 쓰면 된다. 수십 만원짜리 '명품' 가방이라고 바닥에 떨어뜨려도 카메라가 멀쩡하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반면 메모리는 충분해야 하지만, 쓰다가 부족하다 싶으면 나중에 더 사는 편이 유리하다. 한 달이 다르게 가격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충전지는 당연히 2개는 있어야 한다.
 
 
2. 좀 더 다양한 것을 찍어보고자 할 때
 
필름 자동카메라나 컴팩트 디카로도 찍던 것을 DSLR로 찍다 보면 예전에는 카메라가 받쳐주지 못해서 못 찍던 것들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지게 될 것이다. 이때는 한두 가지 장비가 더 필요해지는 게 사실인데, 바로 이 고개에서 지름신에 씌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내게 필요한 것을 장만한다면 투자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치향락낭비일 뿐이다. 불우이웃과 제3세계의 빈민들을 생각해서라도 당신의 탐스런 물욕은 잠재우고 꼭 필요한 것만 구비하시라.
 
 
2-1. 실내에서 가족과 주변사람들을 찍을 일이 많다면
 
바디는 바꿀 필요가 전혀 없다. 우선 급한 것은 충분한 셔터스피드의 확보인데, 두 가지 길이 있다.(삼각대는 아니다. 카메라를 아무리 잘 고정시켜봐야 피사체가 움직이는 데는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안 흔들리는 게 아니라 대상이 흐르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외장플래쉬(스트로보)]
 
아무래도 가지고 있는 편이 좋다. 실내에서도 쓰고, 어두운 야외에서도 쓰고, 밝지만 역광일 때도 쓴다. 내장플래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차이를 가져다주며, 앞으로 성능이 개선될 여지도 별로 없고 수명도 길므로 지금 몇십 만원을 투자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니콘 SB-800이나 캐논 580EX처럼 고급제품을 탐내지는 마시라. 이것들은 외장플래쉬 터뜨리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들(사진기자 등)이 쓰라고 나온 것이다. 실제로 사진기자들도 이보다 비싼 제품을 쓰지는 않는다. 일반인이라면 니콘의 경우 SB-600, 캐논은 430EX라면 충분하다. 앞의 고급제품들과는 10만원 이상 차이가 나서 20만원대 초반이면 된다.
 

 

▲ 외장플래쉬 : 니콘 SB-600
 
[밝은 단렌즈]
 
이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플래쉬를 터뜨리면 안 될 때, 플래쉬를 쓰고 싶지 않은 경우, 플래쉬까지는 필요 없고 조금만 더 밝으면 되는 상황, 더 많이 아웃포커스를 하고 싶을 때에 유용하다. 그러나 화질이 훨씬 나아질 것으로 착각하지는 마시라. 줌렌즈의 화질이 한결 떨어진다는 말은 10~20년 전 얘기라고 사진교재에도 나와있다. 화질이 아닌 밝기(조리개값) 때문에 단렌즈가 따로 필요한 것이다.(아무리 좋고 비싼 줌렌즈도 F2.8 이상은 없다.) 크롭바디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제품들이 괜찮다.
 
-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광경을 넓직하게 찍는 타입이라면: 시그마 30mm F1.4(세칭 삼식이) 또는 니콘과 캐논의 35mm F2.0
- 한두 사람의 인물이나 정물을 집중해서 찍는 타입이라면: 니콘과 캐논의 50mm F1.8 또는 50mm F1.4
- 충분한 거리를 두고 멀찍이 떨어져서 뭔가를 찍는 타입이라면: 니콘과 캐논의 85mm F1.8
 
 
2-2. 풍경사진을 제대로 찍어보고 싶다면
 
[바디]
 
풍경사진은 조금 더 다양한 기술이 요구된다.(경치 좋은 곳에 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구사하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어느 정도는 바디가 다양한 기능을 지원해줘야 한다. 따라서 바디를 한 단계 위로 바꿀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두 단계까지는 아니다. 니콘 D80(별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더 욕심을 낸다면 D200)이나 캐논 30D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90~150만원 선이다. 그보다는 렌즈, 다시 그보다는 기타장비들이 더 요긴하다.
 

 

 

 

▲ DSLR 바디 : 니콘 D80
 
[삼각대]
 
이거야말로 풍경사진에서 제일 필요한 아이템이다. 셀프용으로도 요긴하지만, 풍경을 찍을 때는 아웃포커스를 못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충분한 심도를 못 얻어서 안달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따라서 밝은 단렌즈는 별 장점이 없으며 외장플래쉬는 거의 전혀 필요 없다.) 심도를 깊게 하려면 조리개를 많이 조여야 하고 그러면 셔터스피드가 느려지는데 화질을 생각해 ISO는 못 올리겠고 다행히 피사체는 움직이지 않으므로 결국 대안은 삼각대가 된다. 야경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삼각대 역시 괜히 비싸고 무거운 것을 사지 마시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너무 무거워서 안 가지고 다니기 쉽다. 안 쓸 걸 뭐하러 사는가. 집에 아무리 엄청난 삼각대를 갖다놓고 있어도 아무도 당신을 멋있게 봐주지 않는다. 삼각대는 지지중량이 몇 킬로그램인가가 중요하다. 중형카메라나 망원단렌즈를 쓸 게 아니라면 보통 3kg을 넘을 일이란 없으며, 이 정도 삼각대는 헤드 포함 15만원을 넘지 않는다.
 
고급 삼각대는 헤드 별매형이 많으므로 가격과 무게 양면에서 헤드를 합치면 얼마가 되는지를 계산해야 한다. 특히 합친 무게가 2kg을 넘는다면 5번 출사에 1번이나 들고 나갈까 말까 하게 될 확률 90%라고 장담한다. 이쪽에는 전문 메이커들이 따로 있다. 만프로토, 짓조, 슬릭, 벨본, 벤로 등인데 만프로토와 짓조는 고급/프로용만 만들기 때문에 좀 부담스럽다. 슬릭, 벨본, 벤로(중국산 짓조 카피)에서 나온 (헤드포함가) 5~15만원짜리가 적당하다. 최근에는 트라이오포, 에이스포토(AP) 등의 중국산 모델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 이하는 DSLR용으로는 부적합하고, 그 이상도 역시 보통의 DSLR용으로는 부담스럽다.
 

 

▲ 삼각대 : 슬릭 Pro 330 DX
 
[필터들]
 
그럴싸한 새 렌즈보다도 풍경사진에서 훨씬 더 요긴한 것이 필터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일본의 전문메이커들인 겐코, 마루미, 호야 등이 적당하다. 국산(내지 중국수입품)인 매틴, 쁘레메, 아로나 등은 신뢰도가 떨어지고, 독일제 고급제품인 B+W(슈나이더), 로덴스톡 등은 과연 2배값을 할지 의문이다. 일본 제품들과의 성능차이를 당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에나 구입을 고려하시기 바란다.
 
UV 필터는 보통 때도 렌즈보호용으로 필수적이지만 야외에서는 더더욱 없어서는 안된다. 가격차이도 크지 않으므로 가급적이면 MCUV(멀티코팅이 된 것)로 장만하시라. 모든 렌즈의 앞에 일제 MCUV 필터를 끼워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가격은 개당 2~4만원.
 
CPL 필터(편광 필터)의 유용성을 모르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풍경사진의 초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을 더 파랗게 만들 때, 물 속을 뚜렷하게 찍을 때, 물 표면의 반사 정도를 조절할 때, 유리창 너머를 찍을 때, 나뭇잎이나 금속성 물건 등 빛을 반사하는 물체를 찍을 때, 간단한 ND필터 대용 등 용도가 꽤 다양하다.(CPL 필터의 용례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주력 렌즈용 규격으로 적어도 하나는 꼭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가격은 MCUV의 2배쯤으로 좀 비싸다.
 
ND 필터는 좀 특별한 사진을 원할 때 쓴다. 밝은 곳에서 일부러 셔터를 느리게 하여 특수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 주목적인데, 이런 시도를 원한다면 가격도 MCUV와 비슷한 수준이므로 하나쯤 갖고있는 것도 괜찮다. 어둡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지만 ND4(4배 어둡게 만들어줌)는 좀 약하고 ND8 정도가 적당하다.
 
그라데이션 필터(정확하게는 그레쥬에이티드 필터) 또한 고려할 수 있다. 절반만 ND 효과를 내는 것인데, 하늘이 너무 밝아서 콘트라스트 차이가 지나칠 때 유용하다. 보통 필터와 같이 원형인 것도 있고 사각형 모델도 있지만 어느 것이나 흔히 쓰는 제품은 아니기 때문에 구하기도 비교적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는 것이 단점이다. 콘트라스트 차이의 문제는 언더노출로 찍고 후보정으로 조절해주는 기법으로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므로 꼭 필요한 아이템은 아니다.(이런 후보정 방법의 필름판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존시스템이다.)
 
[풍경용 렌즈]
 
물론 풍경용 렌즈란 따로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풍경사진에는 광각과 망원을 표준계보다 많이 쓴다. 넓직하게 담을 때 광각을 쓰는 것은 상식이지만, 프로들은 망원도 풍경에 많이 쓴다는 점을 명심하라. 디테일을 절취해서 찍고자 할 때 내 마음대로 더 다가가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이 산꼭대기에서 저 산꼭대기를 찍는 경우 등.) 또한 원근감을 압축하기 위해서도 망원은 풍경에서 의외로 종종 유용하다.
 
광각은 일단 애초에 추천했던 표준계 줌렌즈로도 어지간히 커버가 될 것으로 본다. 사실 크롭바디 기준 16~18mm라면 상당한 광각이다. 도저히 더 넓게 찍고 싶은 욕구를 떨칠 수 없다면 광각줌렌즈가 필요한데(요즘 광각단렌즈는 거의 안 쓰인다), 니콘 12-24는 쓸데 없이 비싸고 캐논 10-22는 그래도 60만원대로 바가지는 아니다. 이쪽 역시 서드 파티에 좀 더 싸고 성능은 같은 수준인 제품들이 포진해있다. 시그마 10-20과 토키나 12-24(40~50만원대)가 대표적이다. 망원은 밑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2-3. 망원렌즈로 찍어야 하는 사진들 - 캔디드, 공연, 행사, 동물, 풍경에서의 디테일 등
 
더 다가가면 되지 망원이 왜 필요하냐고 하는 생각 짧은 사람들을 가끔 본다. 어디서 어설프게 줏어들은 얘기는 있는 모양이지만 천만에, 다가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은 무수히 많다. 이런 사진들에 관심이 없다면 물론 망원렌즈는 무용지물이다. 특히 가까운 거리에서 피사체와의 교감을 느끼며 찍는 사진을 좋아한다면 망원은 피해야 할 아이템에 속한다. 위 2-1에 주력하는 사람에게 2-2의 장비들은 불필요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듯 망원이 필요한 사람도 따로 있다. 하나도 멋져보이지 않으니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사지는 마시기 바란다. 굳이 기부를 하고 싶다면 부유한 카메라 회사보다 자선단체 쪽이 좋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겐 분명 망원렌즈가 필요하다면 우선 좀 어둡더라도 가볍고 저렴한 급의 망원줌렌즈를 써보시기 바란다. 우선 망원단렌즈는 일반인에겐 거의 필요치 않다. 마음대로 다가갈 수 없어서 망원을 쓰는 건데 단렌즈가 웬말인가. 대단한 고가에 어마어마한 체구를 자랑하는 망원단렌즈들은 이걸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이나 쓰라고 만든 것임을 잊지 마시라. 더불어 F2.8급의 고급 망원줌도 우선은 추천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상당히 무거우며, 더불어 크고도 비싸다. 백통이니 회통이니 해가며 어린아이처럼 선망들을 하지만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과연 F4 이하로 망원촬영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화질이 과연 얼마나 차이가 날 것 같은가. 시속 100km 이상 밟을 일도 없으면서 스포츠카 타령을 하는 것과 같은 노릇이다.
 
물론 고급 망원줌이 필요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은' 저렴한 제품으로 망원에 충분히 익숙해진 후 고급품으로 바꾸든 말든 결정할 것을 권하고 싶다. 망원이라는 물건은 좀 다르다. 표준계보다 훨씬 손떨림이 심해지고 심도도 종종 필요 이상으로 얕아지며 의외로 포커스 하나 제대로 잡는 것조차 간단치 않다. 이런 특성에 충분히 익숙해지지 않고서는 아빠백통 아니라 증조할배를 쥐어줘도 제대로 된 사진은 안 나온다. 저렴한 제품으로 충분한 연습도 해보고 과연 내게 망원이 필요한지도 판단해본 후 업그레이드 여부를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더불어 업그레이드를 하고 나도 전에 쓰던 염가품을 계속 갖고 있게 될 확률이 높다. 다름 아닌 무게 차이 때문에.)
 

 

▲ 가볍고 저렴한 망원줌렌즈 : 캐논 55-200 USM
 
반면 초음파모터 기능은 가급적 들어가있는 제품을 권한다. 앞서 말했듯 망원에서는 초점 잡는 것조차 그리 간단치 않아서(특히 어두운 곳일 경우) 일반 AF로는 상당한 곤란을 겪기 쉬운 탓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니콘 AF-S 55-200과 캐논 55-200 USM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겠으며, 캐논의 경우 초점거리가 좀 더 먼 USM 제품들이 몇 가지 더 있다. 이보다 한 단계 더 올라가는 선택으로는 손떨림보정 기능까지 들어가있는 니콘 AF-S VR 70-300과 캐논 70-300 IS USM, 밝기만 좀 더 밝은 캐논 70-200 F4 USM(세칭 애기백통), 고급형이지만 최대한 가볍고 저렴하게 나온 시그마 50-150 F2.8 HSM 등이 있는데 모두 50~70만원대로 이미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3. 보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고자 할 때
 
미리 말해두지만 이 단계에서는 절대적으로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한 아무리 장비를 바꿔대도 좋은 사진은 나와주지 않는다. 라이카를 쓴다고 브레송같은 사진이 나온다면 그건 카메라가 아니라 악마의 장난감일 것이다. 5D든 600mm든 매크로든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사진들로 충분한 연습이 되지 않고 바로 더 어려운 분야에 도전하려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 싶다.
 
[프로용 바디]
 
캐논 5D, 나아가 니콘 D2X(s)와 캐논 1D MKII N과 1Ds MKII, 또 더 나아가 마미야 ZD와 핫셀블라드 H3D 등 비싼 바디의 세계는 끝이 없다. 프로용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런 바디들은 대체 뭐가 더 좋길래 이렇게도 대단한 위용을 자랑할까? 일반인에겐 하등 필요 없는 별의별 사양과 기능을 다 집어넣어놨기 때문에, 이런 미묘한 부분들로도 결과물에서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만 쓰라고, 그런 사람들이라면 어차피 씌울 만큼 바가지를 씌워도 살 테니까, 다리박매가 아니고서는 수지가 맞을 수도 없으므로, 1.2배쯤 더 좋게 내놓고서 2~3배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다. 사는 사람도 다 알면서 기꺼이 바가지를 쓰는 것이고.
 
이런 차이들이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거나 먼지가 풀풀 날리는, 아마추어들이라면 벌써 집으로 돌아갔을 상황에서도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사진을 찍어야만 먹고사는 불쌍한 프로들을 위한 방진방습 설계, 단 1/10초 차이라도 놓치면 상관에게 조인트를 까이는 처량한 사진기자들을 위한 고속연사 기능, 단 100만 화소라도 더 큰 용량의 사진을 가져오지 않으면 냉엄한 경쟁사회에서 도태되고 마는 측은한 직업 사진쟁이들을 위한 고화소수, 그리고 참으로 까칠한 사람들에게나 쓸모 있을까 말까한 몇몇 소소한 기능 차이들.
 
잘라 말하지만, 99% 이상의 DSLR 유저들에게는 필요 없는 바디가 이른바 프로용이니 플래그쉽이니 하는 미사여구로 치장한 물건들이다. 어설픈 필름 복고붐도 마찬가지다. 라이카나 콘탁스로 찍으니 과연 더 잘 나오던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만 보면 나는 블라인드 테스트 좀 하고가라며 붙들고 싶다. 정말 돈 펑펑 쓸 것을 감수하고 필름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다면 차라리 중형카메라 쪽으로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이마저도 스캔해서 웹에 올려놓으면 결국 같아보일 테지만.) 속지 말자, 뽐뿌 알바.
 
[아마추어 포토저널리스트와 업무용 사진촬영을 위하여]
 
요즘은 일반인이라도 인터넷 매체를 통해 시민기자로, 포토저널리스트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 사진이 주업무까지는 아닌 기업 홍보실 직원, 각종 단체의 홍보/사진 담당자, 사진 찍는 일을 겸해야 하는 잡지사 기자도 찍어야 하는 종류의 사진은 비슷할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서라면 풍경용 바디, F2.8급 표준줌, 망원렌즈 중 '한 단계 더 올라가는' 제품들, 외장플래쉬 중 고급제품 정도가 유용할 것이다. 유난히 고급형 외장플래쉬가 필요하다고 하는 주된 이유는 광량 때문인데, 예컨대 니콘 SB-800은 하위모델인 SB-600보다 2/3~1스탑 더 유리하다. 취미를 뛰어넘는 수준의 실내촬영이 잦다면 이 정도는 의미있는 차이가 된다.
 
[사진여행가를 위하여]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특히 장기 해외여행)을 하는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많아지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비의 무게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보급형 및 풍경용 DSLR 바디와 2개의 가벼운 렌즈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미니삼각대도 꽤 유용할 것이며, 이미지 저장장치야 말할 나위도 없다.(리뷰용 대형 LCD가 없는 제품은 15만원선, 있는 제품은 40만원선이다.) 여기에 딸려가는 충전기, 충전지들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무게조절에 신경을 써야 한다.(무게 때문에라도 '프로용 바디'를 선택하지 말 것을 권한다. 바디 자체도 더 무겁거니와 내장플래쉬가 달려있지 않은 제품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여행중 플래쉬가 꼭 필요한 상황은 잊을 만하면 등장하곤 한다. 위의 장비들에다 외장플래쉬, 충전지 1벌, 이를 위한 또 하나의 충전기까지 추가된다는 것은 여행에서는 장난이 아니다.)
 

 

▲ 이미지 저장장치 : 넥스토 OTG ND-2300
 
렌즈는 취향에 따라 여러 조합이 가능할 것이다. F2.8급 표준줌과 함께 최대한 가벼운 망원(니콘과 캐논의 55-200을 적극 추천한다)을 가져갈 수도 있고, 망원 취향이 아니라면 밝은 단렌즈가 더 유용할 수도 있다. 여행지에서는 플래쉬나 삼각대를 쓰기 곤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니면 풍경의 경우처럼 표준줌 대신 광각줌을 가져갈 수도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교재 역시 광각줌 + 망원줌의 조합을 우선 추천하고 있다.
 
[스튜디오/제품/모델 촬영을 위하여]
 
제품사진이건 모델사진이건, 스튜디오에서 찍는다고 특별한 바디나 렌즈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조명 세팅과 연출력이 훨씬(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데, 스튜디오용 조명장비야 일반인이 구입할 일은 거의 없을 테니 넘어가도 될 것이다. 반면 유일하게 세로그립의 유용성을 인정할 만한 게 이 분야다. 보통은 무겁고 크고 오히려 기동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되지만, 세로 프레임만으로 줄곧 찍을 일이 많은 한편 무게나 크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렌즈의 경우 마음껏 접근할 수 있으니 망원까지는 필요 없겠지만 모델사진이라면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준망원 단렌즈인 85.8 정도가 유용하다. 극단적인 아웃포커스를 위해 85.4, 심지어는 85.2까지도 탐내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 돈으로 우선 [보그]나 [하퍼스 바자]같은 유명 패션잡지부터 구독하시기 바란다. 과연 극단적인 아웃포커스를 구사하는 프로들의 사진이 몇 장이나 되던가?
 
[특별한 용도의 렌즈들 - 매크로와 초망원]
 
세상에는 표준, 광각, 망원 말고도 상당히 다양한 렌즈들이 있다. 매크로, 초매크로(캐논 MP-E), 초망원, 반사망원, 어안, 틸트&쉬프트 등등. 그러나 이런 렌즈들은 상당히 다루기가 어렵고 일반적으로는 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가장 흔히 위시리스트에 올라가는 것으로 매크로가 있을 텐데, 미안하지만 접사란 그렇게 만만한 영역이 아니다. 단지 음식이나 액세서리같은 것을 흥미 삼아 찍어보기 위함이라면 더더욱 매크로 렌즈가 필요치 않다. 앞에서 말한 표준줌이나 망원 중에 기존 렌즈들보다 훨씬 접사력이 좋은 제품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컴팩트의 우수한 접사능력을 믿어보는 것도 좋다. 매크로 렌즈란 이런 일상적 용도를 한참 넘어서 육안으로는 보기 어려운 것을 찍어내는 용도의 제품인 것이다. 초망원 또한 스포츠 사진이나 야생동물 사진으로 먹고사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도저히 궁금해서 못 참겠다 내지 아무리 취미라지만 나는 꽃이나 곤충(접사), 새나 운동경기(초망원)를 찍는 것이 일생의 낙이라는 분을 위한 추천제품은 아래와 같다. 어안이나 틸트&쉬프트(주로 건축사진용)는 써보지 않았으므로 생략한다.
 
매크로 렌즈는 거의 모든 제품이 다 훌륭하므로 아무 것이나 사도 된다. 단, 망원매크로는 아무래도 화질적으로 불리하므로 표준~준망원 정도의 초점거리를 추천한다. 탐론 90마, 니콘 60마와 105마, 캐논 60마와 100마 등. 더불어 제대로 접사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미니삼각대, 링플래쉬(혹은 적어도 1개의 외장플래쉬), 앵글파인더, (매크로 렌즈에 추가로 달기 위한) 접사링이나 텔레컨버터, 벨로우즈 등이 동원되어야 함을 잊지 마시라.
 
초망원 렌즈는 상당히 부담이 있는 아이템이라 마음 놓고 추천하기가 쉽지 않다. 상식선을 넘지 않는 가격과 무게에 어느 정도 수준이 된다고 하는 제품으로는 탐론 200-500, 니콘 80-400, 시그마 80-400과 50-500, 캐논 100-400 정도가 있다. 초망원 역시 삼각대와 텔레컨버터를 늘 함께 가지고 다니는 부담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하며, 렌즈 자체의 무게와 크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것보다 좋은 삼각대(헤드포함가 20만원 이상)가 필요해지기도 한다.
 

 

▲ 초망원렌즈 : 시그마 50-500
 
 
X. 마무리
 
지름신-장비병을 물리치자고 시작한 글이 오히려 부채질하는 쪽으로 흘러가버리지는 않았나 걱정스럽다. 재삼 강조하지만 사진은 실력으로 찍는 것이지 장비로 찍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실력자라면 좋은 장비로 찍은 결과물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장비를 쥐어줘도 결과물은 계속 부족할 수밖에 없다. 초보운전자를 F-1에 태운다고 자동차경주에서 우승할 턱이 없고, 초보연주자를 스타인웨이 피아노 앞에 앉힌다고 명연주가 나올 턱이 없다. 아무나 눌러도 소리가 나오는 게 피아노이니 분명 이 초보연주자도 스타인웨이의 소리를 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반 몇 개 두드려서 나온 스타인웨이 소리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비싼 장비로 찍은 허접한 사진도 마찬가지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쓴 것은, 그럼에도 내게 필요한 적절한 장비란 엄연히 존재하는 게 또한 사진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피아노와 마찬가지다. 호로비츠를 되살려낸다 해도 튜닝 자체가 엉망인 고물피아노로 좋은 연주를 들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외장플래쉬나 망원렌즈가 없이는 안셀 아담스 할아버지라도 못 찍는 사진이 분명 있다. 장비를 사지 말자는 게 아니라 적절한 장비를 사자는 것이다. 소비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쇼핑중독에 걸리지는 말자는 얘기다.
 
더불어 사진 자체를 배우는 데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자고 말하고 싶다. 우선은 책을 볼 필요가 있다. 사진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최근 1~2년 사이에 제대로 된 사진 관련 책들도 많이 나왔다. 카메라 조작법 대충 나열하고 뽀샵질로 때우는 엉터리 교재들에 울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2~3권씩은 읽어보는 것이 좋다(참고글 링크). 사진강좌를 들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오프라인 수강생끼리의 교류와 자극은 독학이나 인터넷으로 얻기 어려운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이 사실이다.
 

장비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은 그런 자신을 어떻게든 합리화하려는 증상도 동반하곤 한다. 특히 중증인 사람은 유명 사진가까지 끌어들이기 일쑤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자. 브레송이 라이카 M3를 썼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라이카를 동경하고 구입하는 사람은 많은데, 유진 스미스가 올림푸스 펜-F를 썼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펜-F를 동경하는 사람은 왜 거의 없는 것일까? 펜-F는 35mm 필름을 반으로 나눠 쓰는 하프 판형의 소형 SLR로 요즘 남대문에 가면 30만원 이하에 구입할 수 있다. 사진을 위해 카메라가 있고 사람을 위해 사진이 있지 그 역은 아니다.